'2016/01'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01.24 눈사람 만들었어요~ 3
  2. 2016.01.16 찐 생강의 효능 5
  3. 2016.01.12 생명수가 솟아나는 하나님의 교회 8
  4. 2016.01.11 발표에 열중하는 양이 5
  5. 2016.01.10 진정한 용기 6
  6. 2016.01.02 지나친 욕심의 결과 8
  7. 2016.01.01 어리석은 구두쇠 2


15년만의 강추위...
제설작업 하면서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어 봤어요

춥지만...
가족과 함께 해서
따뜻한 시간이었네요
^^
Posted by 오뚝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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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감기예방에 좋은 생강차를 많이 먹습니다.
생강에 대추를 넣어 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강을 쪄서 먹었을때 효능이
더 좋다고 합니다.
(인삼을 쪄서 홍삼으로 먹으면
효능이 더 좋은 것과 같음)

생강을 찌는 과정에서
생강 속 쇼가올 성분이 10배 증가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생강 속 쇼가올과 진저롤 성분이
콜레스테롤을 억제해주고
혈액을 맑게 해주며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해주고 몸속을 데우는 역할을 해주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효과도 우수하고 항암효과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찐 생강은 특히
통증이 심한 사람에데도 좋습니다.

쇼가올 성분은 항염증과 진통효과가 있어
관절염에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말린 생강은 쇼가올 성분이
거의 없으며 찌는 과정에서 쇼가올 성분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통증이 있으신 분에게도 효과가 좋네요^^

 

Posted by 오뚝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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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류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영생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약속이 있는 장소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에는 생명수를 주시는 어머니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체는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물의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며 12%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물을 두고 생명 그 자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우리 영혼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영혼의 생명인 영생도 생명수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없다면 우리 영혼도 심한 갈증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생명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아모스 8:11~13)


우리 영혼에 필요한 생명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진리인 생명수를 구하지만 얻을 수 없어 영혼이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생명수는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생명수를 주시는 주체가 누구인지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요한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밧모섬이라는 곳에서 계시를 받았다. 천사가 모여준 미래에 대한 일들 속에서 그는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령은 성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시다.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에 이 시대 성령께서 오셔서 생명수를 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8)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 옆에서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떤 존재일까. 생명수를 베푸시는 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생명수를 받을 수 없기에 ‘신부’에 대한 문제만큼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도 요한도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요한은 신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낡은 성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인 예루살렘은 누구인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시다. 성령 혼자만이 아닌 성령과 신부께서 함께 생명수를 주신다는 것은 이 시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수를 받기 위해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를 믿어야 함을 뜻한다. 이와 함께 구약시대 많은 선지자들도 예루살렘인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8)


실지로 어떤 건물에서 물이 솟아난다면 큰 문제다. 아마도 기초공사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스가랴 선지자는 생명수가 예루살렘성에서 솟아나 동서로 흐를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이는 실지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생명수가 사시사철 쉼없이 흘러 넘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렇게 시작된 생명수는 더욱 그 양이 많아져 동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흐를 것을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에스겔 47:1~5)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던 생명수가 멀리 흘러갈수록 무릎, 허리까지 차 올라 나중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이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됐지만 마침내는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점점 더 왕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 시발점이 바로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생명수라야 전 세계로 흘러간다. 세상의 다른 유명한 신학자나 성경 연구가가 아닌 오직 하늘 어머니라야 가능한 예언이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에스겔 47:12)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흘러 넘친 생명수는 결국 강이 되고 그 강 좌우에는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진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요한계시록 22:1~5)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아난다고 예언한 반면,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도 성령의 신부 되신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어린양의 보좌’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예레미야 3:17)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좌, 즉 어린양의 보좌가 예루살렘이라고 증거했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어린양의 보좌’는 ‘하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는 생명강이 예루살렘에서 흘러 넘치는 모습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기록한 요한의 계시와 같다. 이는 성경 전반에 걸쳐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명수는 오직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자들만이 하늘나라에서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라도 생명수를 받지 못한다면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천국의 영광과 축복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심한 갈증을 느끼는 이 시대 하늘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말씀하고 계신다.

“오라!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

출처: 패스티브닷컴(www.pasteve.com)

 

Posted by 오뚝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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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에 열중하고 있네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는 안되며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방송매체를 통해 들었던
말이 생각나네요...

지금 이 순간
주어진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무엇보다 열정이 필요함을
느끼게 하네요~~





Posted by 오뚝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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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Yes"할때 "No"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더군다나 "No"라고
했을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신변의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면 용기를 내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나치당이 무자비한 독재 권력을 휘두를 당시 이에 굴하지 않고 몸으로
"No"를 외친 안 남자가 있습니다. 그 이름은 '아우구스트 란트메서'

그는 1936년 6월 함부르크에서 열린 해군 훈련함 진수식에서, 모든 군중이 일제히 나치식
경례를 할 때 혼자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사랑하는 아내는 히틀러가 말살시키고자 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독일인으로서 유대인과 교제하면 불리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그는, 이혼하지 않으면 감옥에 수감될 것이라는 협박에도 꿋꿋이 가정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결국 체포되어 1938년에 강제수용소로 보내졌고, 출소 후에는 2차 세계대전에 징병되어 작전 중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감옥에 끌려가 여러 형무소를 전전하다 끝내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그는 혼돈의 시대에 행복할 권리는 빼앗기고 말았지만, 그의 진정한 용기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을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구원자를 올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구원자를 올바로 알고 영접한 사도들과 제자들은 여러 위험과 핍박속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지킨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성령과 신부를 깨닫고 영접한 사람들 또한 많은 어려움과 핍박이 있을지라고 끝까지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지킨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22장 17절)

Posted by 오뚝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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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욕심'에 대한 깨달음을 줍니다.

파홈이라는 소작농이 있었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의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그는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일을 해서 땅을 샀습니다. 그런데 자기 소유의 땅이 생기자 더 큰 욕심이 생겼고 더 많은 땅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땅에 욕심을 내던 중 그는 어떤 마을에 가면 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땅을 파는 방식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1천 루블(Rubble)을 지불하면 하루 종일 자신이 걸은만큼의 땅을 주는데,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파홈은 1천 루블을 지불하고 땅을 얻기 위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땅들이 더 비옥하고 탐스러워보였기 때문에 걸음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마음이 급해져서 장화도 옷도 팽개친 채 계속 달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그는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떤 땅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죽기살기로 출발점을 향해뛰기 시작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뛴 그는 다행히 해가 떨어질 무렵 겨우 출발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한 나머지 결국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파홈의 하인들이 그를 묻기 위해 곡괭이로땅을 팠는데, 그 넓이는 반평 남짓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자신의 몸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무덤뿐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욕심에 이끌려 시험을 받게 되고 시험을 통해 마음이 강퍅케 되고 결국 멸망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장 14절~15절)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브리서 4장 15절~19절)

Posted by 오뚝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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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전해지는 민담 중 ‘어리석은 구두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밀가루 사업을 해 돈을 많이 벌었던 구두쇠는 어느 날 소매가가 하락해 8백만 원 상당의 손실을 보게 됐다. 실의에 빠진 구두쇠는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 튼튼한 노끈을 구매했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 소식이 궁금해 라디오를 틀었는데 뉴스에서 전 유럽의 밀가루 가격이 폭등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구두쇠가 언뜻 계산을 해봐도 4천 7백만 원 상당의 이익이 생겼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기뻐할 일인데도 구두쇠는 결국 죽고 말았다. 이유인즉 사놓은 노끈이 아까워서였다. 밀가루 가격이 폭등했다는 기쁜 소식에 웃으면서 죽었다는 결말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우리의 정서로서는 황당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오늘날 기성교인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이익을 두고 고작 노끈 하나를 버리지 못해 생명을 내던진 구두쇠처럼, 천국이라는 큰 축복을 두고 자신의 신앙경력을 고집스럽게 앞세워 구원을 놓치고 있는 교인들이 많이 있다.


일례로 ‘안식일을 지켜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두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30여 년 동안 다녔던 자신의 신앙이력과 교회 안에서의 직분, 인맥, 그리고 ‘우리 목사님’을 따르는 맹종이 결국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내던지고 있다. 교회에 몸담았던 몇 십 년간의 시간과 노력 등이 아까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안식일 하나 안 지켰다고 지옥에 보내실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느헤미야 13:17)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로마서 2:4~8)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가리켜 ‘악’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불의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노와 분으로 보응하겠다고 경고하셨다. 이렇듯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제라도 고집된 마음을 돌이켜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신앙이력을 끝까지 버리지 못해 어리석은 구두쇠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지, 선택은 자신에게 달렸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이사야 56:2)

출처: 패스티브(www.pasteve.com)

Posted by 오뚝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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